[단풍여행]  주왕산 산수화 그리기

▲  2005.10.24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과 싸울 때 군량미처럼 보이기 위해 낱가리를 둘렸다는 기암의 가을 .


 주왕산 단풍여행

만산홍엽(滿山紅葉). 흩날리는 단풍비에 주방천은  붉게 물들어..........

국립공원 주왕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발가는 곳곳마다 골이 깊어 장관을 이루고 주왕의 전설이 깃든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단풍이 아름다워 사계절 여행자의 발길이 그칠날이 없다.   
발닿는 곳곳마다 맑은 계곡물과 울창한 수림이 우거지고,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있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비경에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산이다.
지금(10.25) 주왕산은 단풍세상이다. 만산홍엽에
흩날리는 단풍비는 주방천은  붉게 물들이고 있다.

 전설의 고향 주왕산.
바위가 병풍처럼 가득하다하여 석병산으로도 불리우는 주왕산의 바위와 골짝에는 주왕의 전설이 절절이 남아 있다.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보조국사가 세웠다는 대전사,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과 싸울 때 군량미처럼 보이기 위해 낱가리를 둘렸다는 기암, 주왕의 딸 백련낭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백련암, 주왕이 마장군의 병사를 막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자하성, 주왕이 군사를 훈련시켰던 곳이며 백련낭자가 성불한 곳으로 전하는 연화굴,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는 주왕암, 이곳에서 숨어 지내던 주왕이 마장군의 화살과 철퇴에 맞아 죽었다는 주왕굴, 주왕의 군사들이 갑옷과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 등은 주왕의 한맺힌 전설를 간직하고 있다.

 주왕산의 들머리 천년 고찰 대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672년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 경내에는 보광전(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때는 사명당이 승군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왕산의 심장부 주왕암과 주왕굴 .
주왕암은 주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절로 주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곳은 관음봉, 지장봉, 비루봉, 촛대봉, 향로봉, 무장봉 등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있어 경치가 장관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단풍바다는 환상적이다.
주왕암에서 철제 사다리를 오르면 주왕이 최후를 마쳤다는 주왕굴이 있다.

제2폭포와 제3폭포도 주왕산의 볼거리.
제2폭포는 학소대 제1폭포를 지나 20여분 가면 닿는다. 주왕산 계곡안에 있는 세개의 폭포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제3폭포는 대피소에서 왼쪽길로 30여분걸어 오르면 만날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2단 폭포로 남성적인 웅장함이 여행자의 시선을 끈다

Tip 주변 볼거리

한폭의 산수화 주왕산 절골협곡(峽谷)의 비경

외주왕 대전사를 빠져나와 주왕산 입구에서 영덕방향으로 이정표를 따라 두고개를 넘으면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서 진입한다.
주왕산 국립공원 남동쪽 주산지옆에 위치한 주왕산 절골은 주방천계곡에 비해 규모는 작으나, 풍광 자체는 주방천 계곡보다 더 뛰어나다.
주왕산하면 기암과 주방천을 연상하게 되고 주왕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방천으로 몰려, 늘 절골계곡은 한갓진 계곡이다. 약 10여 ㎞에 달하는 계곡 따라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기암괴봉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별천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주왕산 절골계곡은 아직까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시쳇말로 웰빙 그 자체이다.
인터넷에서 절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여도 변변한 사진과 설명글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절골계곡 오른쪽의 주산지는 정보가 바다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올가을 들어 단풍의 절정인 23일에도 주산지 차량 행열은 끝간데 없어도 주산지 바로 옆 절골은 한산한 편이였다.
주산지의 빼어난 자연미와 신이 그린듯한 한폭의 산수화같은 절골의 비경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절골계곡은 절골매표소(1,600원)를 지나면서 시작되는데, 5분 정도 숲길을 오르면 좁고 험한 골짜기인 절골협곡(峽谷)을 만난다.
절골은 초입부터 비경으로 다가온다. 기암괴봉, 오색 단풍, 벽계수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속에 빠진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계류에 축 늘어진 빨간 단풍가지, 단풍에 불게 물든 웅덩이의 맑은 물, 단풍비를 맞으며,  낙엽을 밟으며 한걸음 한걸음 한적한 계곡을 걷노라면 신선에 온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는 그 흔한 간이매점, 화장실도 볼 수 없는 천연 그대로의 계곡이어서, 서너군데 설치된 목책다리만 없다면 여기가 국립공원이 맞나 할 정도로 원시적 자연미 그대로이다.

사진촬영의 메카 주왕산 주산지

주산지는 이제 촬영지의 메카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맘때(10.25-11.5) 쯤이면 서울, 부산, 광주, 목포, 대전, 경기, 강원 등 전국에서 모여 든 차량들로 주산지 주차장은 만차를 이룬다.
주왕산 단풍이 곱게 물들고 주산지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10월의 주말에는 발디딜틈이 없다. 이때가 비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아침 6시면 주차장은 만차로 도로변에 차를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가 되면 좁은 주산지에는수백명의 사진마니아들이 눌러되는 셔트 소리로 주산의 새벽은 열린다.
천리길을 마다않고 서울에서 목포에서 밤새워 달려오는 사진 마니아들을 미치게하는 주산지의 흡인력은 무엇인가?
분명, 사진마니아들을 미치게하는 마력이 주산지에는 있다.
주왕산 연봉에서 뻗친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이 한 적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도 좋지만 맑은 주산지에 비치는 주왕산 능선의 반영, 호수 속에 자생하는 수령 150년생 왕버들과 능수버들, 새벽녘에 호수위에 솔솔피어 오르는 물안개, 다람쥐, 산꿩....자연이 어우러져 주산지에 그려내는 산수화(山水畵)는 필설로 표현치 못할 정도로 사진마니아들의 혼(魂)을 빼았는다.
주산지의 아름다움이 네티즌들에 의하여 전해 지다가, 김기덕 감독이 이곳 주산지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영화 촬영장으로 알려 지면서 일약 스타 촬영지로 업그레이드 된 곳이다.
주산지는 주왕산 연봉에서 뻗친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이 한 적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라서 주산지 전망대에서 조망((眺望)하노라면 잠시나마 속세를 잊고 휴식을 취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 장소이기도 하다.
주산지의 내력은 이러하다.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서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호수는 1720년 8월 조선조 숙종 46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 경종원년에 준공하였으며, 60가구가 이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호수의 규묘는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 8m 아담한 호수로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못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호수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30수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 낸다,주산지 둑 옆에는 작은 비석이 하나 서있는데 주산지의 축조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축조당시 유공자들의 이름과 공사기간에 관한기록,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일장저수(一障貯水), 류혜만인(流惠萬人), 불망천추(不忘千秋), 유일편갈(惟一片碣)
(정성으로 둑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조각 돌을 세운다.)

Tip 주왕의 전설

주왕산은 '전설의 산'이다. 주왕산은 저마다 빼어난 자태를 뽐내며 경쟁이라도 하듯 솟아오른 기암괴봉과 깍아지른 석벽이 둘러있어 천혜의 절경을 이루는데『전설의 산』답게 봉우리와 골짜기마다 전설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신비감을 더해준다.
기암괴석, 동굴, 절 할 것 없이 산골짜기 곳곳에 전설이 서려있다.
 그 중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낳은 전설이 대표적이다.  주왕는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의라는 사람의 9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이 주도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 뿐 아니라, 5세때 이미 글을 배워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고 천문지리에동 능했다고 한다.
 주도는 이때부터 왕후장성을 꿈꾸면서『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주도는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 인물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자  장사 1백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군중을 모으고 남양땅에 웅거하하며, 이때가 당나라 덕종15년 (799년, 신라 소성왕1년)이었다.진나라의 후예인 주도(周鍍)가 후주의 천왕(後周天王)임을 자청하며 반길르 들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쳐들어가 대패하였다.  싸움에 대패한 주도은 숨을 곳을 찾아 요동을 통하여 신라로 도망을 왔고 한다.
그때 주도를 따르는 군사는 1천여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후 관동(지금의 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다다른 주왕(周王)은 석병산(주왕산의 옛이름)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었으므로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나라안에 퍼졌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 주도가 신라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에 주도을 잡아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당나로부터 주도를 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신라왕은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도와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마일성 장군과 그의 5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였다.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삼성(三聲),사성(四聲),오성(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마장군의 군사들은 선뜻 주왕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듯이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서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이 바로 마장군이 화살을 쏘아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그후 마장군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공격하니  주왕의 군사들이 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주왕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서 주왕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주왕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흐르는 폭포수가 굴 입구를 막고 있으므로 숨어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천명이 다했음인지 천혜의 은신처라 방심하고 있다가 어느날 폭포수에 세수를 하기 위해 굴 입구로 나왔다가 마장군의 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로써 주왕은 후주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장군 형제의 철퇴를 맞고 운명을 다했다고 한다.
 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2005.10.24 사진.글:정해유(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  2005.10.24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672년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 경내에는 보광전(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때는 사명당이 승군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2005.10.24 대전사 가을 풍경

 

▲  2005.10.24 .   보광전(殿)과 은행나무 그리고 기암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다.

▲  2005.10.24  대전사의 가을

▲  2005.10.24 .주왕산은 단풍세상이다. 만산홍엽 주왕산 능선

▲  2005.10.24 . 만산홍엽에 흩날리는 단풍비는 주방천은  붉게 물들이고 있다

 ▲  2005.10.24 . 지금(10.25) 주왕산은 단풍세상이다. 단풍비에 여행자는 즐겁다.

 ▲  2005.10.24 .신이 그린 산수화 주왕산  급수대  가을 풍경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50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급수대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  2005.10.24 .신이 그린 산수화 주왕산  급수대  가을 풍경

 ▲  2005.10.24 . 주왕산 시루봉
주왕산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리우는데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옛날 어느 겨울철 도사가 이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고로 얼굴산이라고도 부른다.

▲  2005.10.24 . 주왕산 학소대 병풍바위
 
학소교를 굽어보고 있는 큰 바위 봉우리로 청학과 백학이 떼를 지어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鶴巢臺)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 해방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합을 쏘아 잡아 버린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 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옛 보금자리만 남아있다.
또한 학소대 중간쯤에 수백년 묵은 풍채가 좋은 회양목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이 탐이나서 톱을 허리에 차고 암벽을 기르다가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있다.
이처럼 학소대는 애닯은 사연이 얽혀 있으며 주왕산의 경관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기암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듯하여 병풍바위라 부른다

 ▲  2005.10.24 .주왕산 시루봉 가을 풍경

 ▲  2005.10.24 .제3폭포
제1폭포에서 3km정도 거리에 제3폭포가 있다. 3 폭포도 2단 폭포인데, 그 규모가 주왕산 폭포 중에서 제일 크다.
이곳에서 떨어지는  3폭포수는 주왕산 심심 계곡을 따라 제2폭포, 제1폭포를 거쳐 주왕산 골짜기를 누빈다.

 ▲  2005.10.24 제2폭포
제1폭포에서 2km 거리에 있다. 두줄기로 이루어진 2단폭포인데, 한줄기는 호박처럼 파인 곳에 일단  쉬었다가 다시 떨어진다. 유명한 조각가의 창작품같이 오묘한 미를 지녔다.
주왕산 계곡안에 있는 세개의 폭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며 한번 이곳을 찾으면 발걸음을 돌리기 쉽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  2005.10.24 .주왕산 제1폭포

 ▲  2005.10.24  ▲  2005.10.24 . 주왕산 학소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