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여행.  창덕궁의 초가을  

 ▲  보물 383호 돈화문 (敦化門)
돈화문은 조선시대 5대 궁의 하나인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불 타 버린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창덕궁을 다시 지으면서 문도 함께 세웠다. 돈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조선시대 궁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세운 문루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  사적 제122호 창덕궁에는 돈화문(보물 제383호), 인정문(보물 제813호), 인정전(국보 제225호), 대조전(보물 제816호), 구선원전(보물 제817호), 선정전(보물 제814호), 희정당(보물 제815호),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 다래나무(천연기념물 제251호)등의 문화재가 있다.
창덕궁은 1405년 조선왕조 제3대 태종 때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로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전통건축으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건축과 조경이 고도의 조화를 표출하고 있으며, 후원은 동양조경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조형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이 있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국보 제225호.창덕궁 인정전(昌德宮仁政殿)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의장(意匠)이 잘 갖추어져 있다.
창덕궁은 오랫동안 조선왕조의 법궁(法宮) 구실을 하였으므로, 조정의 각종 의식이나 외국사신의 접견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인정전의 전면에 행랑으로 둘러싸인 전정(前庭)에는 품계석(品階石)이 마련되었으며, 남쪽에 인정문이 있다.

 ▲  인정전(昌德宮仁政殿) 용상(龍床)
용상(龍床)을 설치한 어좌(御座) 뒤에는 오봉산일월도五峰山日月圖)의 병풍을 쳤다. 인정전은 내부에 꾸며진 한말의 서양식 시설에서 역사와 함께 변화되어 왔음을 찾아볼 수 있다.

 ▲  창덕궁 대조전(보물 제816호) 뜰 아래 설치된 앙부일귀

  ▲  부용정(芙蓉亭) 초추 반영

 ▲  부용정(芙蓉亭)
조선 숙종 33년(1707)에 이곳에 택수재(澤水齋)를 지었는데, 정조 때에 이를 고쳐 짓고 이름을 부용정이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꽃을 즐기고 고기를 낚으며 시를 읊기도 하였는데, 기둥에는 이곳의 풍광을 읊은 시를 적은 주련(柱聯) 10개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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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柱聯)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

 ▲  창덕궁 후원인 비원의 추색

 ▲  창덕궁낙선재 (昌德宮樂善齋)
창덕궁 후원(後園)에 딸려있는 주택풍의 건물로, 본래 국상(國喪)을 당한 왕후들이 소복(素服)을 입고 은거하던 곳이므로 상중에 근신하는 왕후가 소박한 건물에서 예를 갖추는 법도를 지키도록 하여 단청도 하지 않았다.
후원은 절제되면서도 조화 있는 조경으로 꾸며져 있다. 1846년(헌종 12) 창건되었다.
1926년 순종이 죽은 뒤 윤비(尹妃 : 순명효황후)가 이곳에서 은거하다 별세하였고, 1963년 일본에서 환국한 영친왕 이은(李垠)도 이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  창덕궁 낙선재  거북무뉘 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