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르포] .영남루& 표충사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 여행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포토르포]
.영남루& 표충사

신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여행

2006년 1월25일 23시부터 대구-부산간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기존 대구- 경주- 언양-부산으로 우회하는 경부고속도로보다, 약 40km가 단축되고 운행시간도 50분대로 가까워졌다.
그동안 도로여건이 좋지 않아 접근하기 어려웠던 경북 청도와 경남 밀양 등 영남 남부 내륙지역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이번 고속도로 개통으로 접근이 쉬워졌다.
개통 다음날인 26일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그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영남 내륙의 문화유산을 둘러 보았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밀양의 영남루와 표충사를 찾아 경부고속도로  경산 JCT를 진입하여 일직선으로 쭉뻗은 제한속도 110km로 새길을 달리는 기분은 상쾌하다.

어젯밤 개통하여 이틀째인지 교통량도 많지 않다.
이길은 대구에서 부산까지 82.05km를 4차선으로 도로폭 23.4m, 교량 104개소, 터널 13개소, 휴게소 2개소, IC 7개소, JCT 2개소인 민자로 건설된 고속도로이다.

부고속도로 동대구JCT ∼경산∼청도∼밀양∼삼랑진∼김해∼ 상동∼김해 대동 JCT로 연결되고 휴게소는 상하행선 청도 한곳에 있다.

대구에서 부산을 기존 경부고속도로는 120㎞거리(통행료 승용차 기준 5700원)로 1시간 30분이 소요 되는데,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실제 달려보니  경산JCT에서  김해 대동 JCT까지 50분 정도(통행료 승용차 기준 8500원) 로 가까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산과 계곡을 일직선으로 뚫어 다리와 터널이 연이어져 지루하지 않고 주변 풍경도 아름다웠다.
찻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풍경에 지루한줄 모르게 한참 달리다 보니 하행선 청도 휴게소이정표가 여행자를 부른다.
첫날이어서인지 제법 널찍한 주차장은 차들로 빽빽하다.
주유소, LPG충전소,식당등의 시설을 갖추고 주차장도 21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널따랐다. 이 고속도로에는 상하행선에 휴게소가 한곳 뿐이다.
차를 다시 몰아 이길의 종착점인 김해 대동 JCT까지 달려서 턴하여 오늘의 목적지인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은 이 고속도로변에서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곳이다.
밀양IC를 빠져나와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본사건물 옆으로 조금 달리면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밀양시가지이고 우회전하여 24번국도를 타면 표충사, 얼음골로 이어 진다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 청도 구간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청도휴게소. 주유소, LPG충전소,식당등의 시설을 갖추고 주차장도 21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널따랐다. 이 고속도로에는 상하행선에 휴게소가 한곳 뿐이다.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  2006년 1월25일 23시 개통된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밀양IC를 빠져나와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본사건물 옆으로 조금 달리면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밀양시가지이고 우회전하여 24번국도를 타면 표충사, 얼음골로 이어 진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겨울 풍경.남천강을 굽어보며 대숲에 감싸인채 우뚝 솟은 영남루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겨울 풍경.오른쪽 대숲 아래가 아랑각이다.「아랑의 전설」이 깃든 대숲그늘에 초록빛을 더하는 남천강이 아랑의 한을 품은 채 유유히 흐르고 있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안쪽의 주요 볼거리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겨울 풍경.천진궁의 정문 만덕문

 

▲  2006년 1월26일. 경남유형문화재제117호 천진궁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난간에서 바라 본 밀양시가지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안쪽에 있는 박시춘 옛집인 고가와 박시춘 노래비.

운다고 옛 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소리.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고  모두 다 흘러가면 덧없건만은  외로이 느끼면서 우는 이 밤은  바람도 문풍지도 애달프구나.』


클릭 ♬~~애수의 소야곡 듣기♪~~~

박시춘 생가의 노래비에는 그의 대표곡인 '애수의 소야곡'이 새겨져 있다.
밀양 출신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거성인 박시춘 옛집을 2001.5.20일 복원하고,뜰에는 박시춘선생의 주요 작곡 300여 노래 곡목 중 국민들에게 대중화 된 『애수의 소야 곡』을 노래 비에 새겼다.  
박시춘은 1913년 밀양시 내일동 226번지에서 박원거의 2남2녀중 2남으로 출생하여 1925년 11세때 순업대에 입단하여 음악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7세부터 작곡 활동하여 한국연예인 협회 초대이사장으로 피선이후 7대까지 역임 하고 1996년 6월30일 별세하였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가에 서있는 '밀양아리랑 노래비'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위에 있는 밀양시립박물관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가에 서있는 '유정사명대사동상'
사명당 유정은 밀양 출신의 승려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1604년 국왕 선조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귀국시켰다. 그의 고향인 밀양 영남루에 동상을 세워 기린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위에 위치한 신라천년 고찰 무봉사 일주문.
영남루 인근에 위치하며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암자로 전해지며 조선 조 초기 영남사가 폐사되자 독립된 절이 되었으며 밀양의 지세가 봉황이 춤추는 형 국이라 하여 무봉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강언덕에 우뚝솟은 영남루와 어울리는 그림같은 풍광을 지닌 운치 있는 사찰로 예 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그치지 않았으며 경내에 소재한 보물 제493호로 지 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이 유명하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위에 위치한 신라천년 고찰 무봉사.
무봉사는 영남루 동쪽편에 있는사찰로, 신라 혜공왕 9년(773)에 법조선사(法照禪師)가 창건했던 영남사(嶺南寺)의 말사라는 유래가 전해 진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아래 대숲에 있는 아랑각. 아랑각을 찾아 영남루 뒤편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자 남천강변 언덕위에 노거수 느티나무가 나그네를 먼저 맞이한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아래 대숲에 있는 아랑사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아래 대숲에 있는 아랑사안의 아랑 영정(이당 김은호作)
밀양아리랑 중 「아랑」과 얽힌 노래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날좀 보소/......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오네// 저 건너 대숲은 의연한데/ 아랑의 서른 넋은 애달프다// 송림 속에 우는 새 처량도하다/ 아랑의 원혼을 네 설워하느냐// 남천강 구비처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비친 달빛 교교한데/ 남천강 말 없이 흘러만 가네...//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났네/ 아리아리랑 얼시구 노다가게』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아래 대숲에 있는 아랑사 좌측벽화 .
[영남루에서 아랑을 연모해 온  밀양관아 관노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 달라는 말에 아랑은 냉정하게 관노의 무례함을 꾸짖어니 관노는 아랑을 겁탈하고 칼로 아랑을 죽여 땅에 파묻었다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

 

-아랑에 얽힌 전설 1-

조선조 명종 때, 밀양에 사는 부사에게 '아랑'이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유모의 도움을 받아 자란 아랑은 얼굴만큼 마음씨도 고왔다.
그 뿐 아니라 글과 바느질 솜씨가 훌륭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흠모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관아에서 심부름을 하는 관노가 아랑의 고운 모습을 본 후. 그만 그녀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랑의 유모에게 뇌물을 주고 아랑을 꾀어내게 되었다.
유모는 보름달구경을 하자며 아랑을 영남루로 데리고 왔다.
유모가 살짝 자리를 비는 틈에 관노가 나타나 그동안 혼자 연모해 온 것을 아랑에게 고백하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랑은 냉정하게 관노의 무례함을 꾸짖었다.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한 관노는 아랑을 겁탈하고 갖고 있던 칼로 아랑을 죽여 땅에 파묻었다.
아랑이 죽은 줄 모르고 찾던 부사는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다.
그 이후부터 신임부사가 오기만 하면 첫날밤에 모두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밀양 부사로 오는 것을 꺼려했다.
조정에서는 특별대우를 한다면서 까지 밀양부사로 갈 희망자를 구했다.
이때 서울 남산골에 사는 한 가난한 선비가 밀양부사를 자원했다. 자기가 죽더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밀양 부사로 부임한 날 이 부사는 관노들에게 초를 많이 구하게 했다.
밤이 되자 촛불을 사방에 켜놓고 잠을 자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머리를 풀어헤치고 갈기갈기 찢어진 피투성이 옷을 걸친 처녀가 나타났다.
죽은 아랑 귀신이었다.
부사는 정신을 차리고 "도대체 무슨 곡절이 있길래  이렇게 부사가 오기만 하면 나타나느냐"하고 물었다.
이 처녀는 부사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는 "지금까지 부사가 죽은 것은 제가 죽인 것이 아니고 저의 모습을 보고 그만 놀라 죽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자기가 억울하게 죽게 된 이유를 차근차근 이야기 했다.
그리고는 내일 자기를 죽인 사람의 갓 위에 흰나비가 되어 앉을테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했다.
부사는 처녀와 약속한 대로 범인인 관노를 잡아 처단하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내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 뒤로는 귀신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밀양 주민들은 아랑각을 지어 그 처녀의 정절을 기리고 소원을 기원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밀양 아리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랑에 얽힌 전설 2-

   지금으로부터 사백 여 년 전 이조 명종 때 밀양부사로 도임한 윤부사에게 아랑(동옥)이라는 딸이 있었다.
유모의 꾀임에 빠져 영남루로 달구경 갔다가 유모가 자리를 비운사이 괴한이 나타나 아랑에게 겁탈을 하려하자 아랑은 죽을힘을 다해 항거하였다.
괴한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랑을 죽여서 대밭 속에 던져버렸다.
이때부터 밀양에 내려오는 후임 부사마다 부임하자마자 기절을 하여 그 날로 죽게 되니 밀양부사 자리는 비어 있게 되었다.
이때 과객으로 지내던 이진사라는 사람이 영남루에서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다.
유모의 꾀임으로 괴한에게 죽음을 당해 대 밭에 버려졌다는 말을 하면서 꿈에 나타난 아랑은 빨간 깃대를 흔들면서 사라졌다.
이에 이진사는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를 하여 밀양부사로 자원하여 꿈속에 나타난 아랑의 말대로 붉은 "주(朱) 기 기(旗)자" 주기라는 이름을 찾아 범인을 추궁하니 자백을 하였다.
이부사는 대밭에 가서보니 시체가 칼에 꽃 힌 채 썩지도 않고 있었다.
시체에 칼을 뽑으니 뼈만 남게 되었다. 그 뼈를 좋은 곳에 묻어주니 그 후로 밀양고을이 평온을 되찾았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아랑이 지킨 순결의 정신을 기리어 아랑사당을 짓고 지금까지도 매년 모범 된 규수들을 뽑아 음력 4월16일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  2006년 1월26일.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 언덕아래 대숲에 있는 아랑사 우측벽화 .

[서울 남산골에 사는신임 밀양부사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아랑의 모습을 그린 그림]

  대숲에 감싸인 아랑각 작은 옆문을 밀치자 휘어진 대나무 사이로 돌계단이 나타난다. 묘한 호기심으로 계단을 하나 둘 오르니 「아랑유지(阿娘遺址)」라고 씌어진 작은 비가 보이고  대숲에 스치는 바라결에 애달픈 아랑의 비명이 들리는듯하다.

 

 

 

 

 

 

 

 

2006.1.26 사진.글  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정해유